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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목적

2026. 3. 31.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중3 시절부터 끊이지 않고 물어 온 질문이다. 다음은 그 질문에 내가 찾아 온 답에 대한 이야기다.


그때 내 삶의 목적은 '행복'이었다. 좀 더 정확히는 '즐거움'. 대부분의 청소년이 그렇듯,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느끼는 만족감. 그것으로 충분했다. 머리를 기르고 교복을 늘리고 싶던 학생은 자유를 갈망했고 힙합을 사랑했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가사를 쓰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고민은 깊어졌다. 순간의 만족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마음이었다. '행복'이 목적은 맞는 것 같아 질문의 폭이 조금 줄었다. "행복이 뭘까? 언제 느끼는 걸까?" 중고딩이던 때부터 친구나 선배들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고3 — 처음으로 돈을 받고 과외를 시작했다. 그리고 느꼈다.

'내가 뛰어나지는 것 만큼, 나를 행복하게 하는 건 누군가 성장하게 돕는 거구나.'

그것이 지식이든, 기술이든, 삶을 대하는 태도이든. 가르침이 나의 보다 깊은 행복의 영역임을 배웠다.


대학에 입학했다. 세계 최고의 명문대학교, 주위 모두가 부러워하던 천국이었으나, 나에게는 지옥에 조금 더 가까웠다. 천재인 줄 알았던 나는 조금 뛰어난 일반인에 불과했고, 진짜 천재들 사이 한없이 작아졌다. 너무 뛰어난 이들 선후배들 사이에서 중심을 잃었다. 초조하고 조급해지는 미래에 대한 불안은 파도처럼 나를 덮쳐 난파시켰고 — 결국 '행복'에 대한 해석도 무너져 휩쓸렸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 초봉 1억 이상을 받으며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것'

한번도 원해본 적 없는 돈과 명예를 추구하던 유일한 인생의 순간이 그때였다. 맞지 않는 옷에 억지로 몸을 구겨넣으며, 조금씩 망가져 갔는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나만의 지옥을 벗어난 건,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겨울 방학이었다.


22살, 졸업을 1학기 남겨두고 무기한 휴학을 했다. 갑자기 찾아와 도무지 떠나지 않는 두통으로 찾은 응급실, 혈압은 230/170이 나왔고 — 결국 만성신부전 판정을 받은 탓이다. 인생의 모든 계획은 무너지고, 당연할 것 같았던 성공은 무산됐다. 모두가 전력질주를 할 때 혼자 멈춰버린 환자. 누군가의 성장을 돕는 건 고사하고, 내 한 몸 건사하기조차 버거운 존재가 되었다.

자연스레 생각은 깊어졌다. 병상에 누워있는 날들이 많았고, 매주 3번 4시간을 누워있어야 하는 투석의 시간은 더욱 그러했다. 처음으로 깊이있게 내 마음을 들여다 본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생각하면, 오히려 중심을 잡는 시기이기도 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행복'이 맞을까? 고민하면서도, 마땅히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기에, 행복을 보다 구체적으로 정의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 — 순간 원하는 만족이 아닌, 삶이라는 여정의 방향과 방법에서 스스로 납득이 되고 만족할 수 있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다시 중심을 잡고 걸은 길이 '교육'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간 직장은 억대연봉과는 거리가 먼 교육봉사단체였고, 학생들을 만나고, 배움과 성장을 도울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물론 3개월 만에 퇴사를 다짐하기는 했지만. 머릿 속에서 경험하던 교육과 현장에서 만나는 교육은 달랐다. 방과후 수업이었지만 학교와 연계하며 만들어가는 교육 과정에서 훨씬 더 많은, 건강하고 구체적인 고민들을 시작했다.

그때쯤부터 내 인생의 방향성은 자연스레 구체화됐다. 나의 '행복'은 '행복을 돕는다'는 문장으로 정의됐다. '인생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그 방향을 위해 나아가는 삶의 여정'을 행복이라고 정의한다면, 나의 '방향성'은 다른 누군가들이 그런 인생을 살아가도록 돕는 존재가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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